오늘도 잡다한 생각들을 풀어보는 시간으로
채워보려 합니다.
1. 공감
함께 느낀다는 건데, 제 이야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고등학생때는 약간은 외소하고 주눅든 아이의 모습이었고, 한 구석탱이서 책만 보던 아이였습니다. 참 왜소한 고교생으로 고2 방학무렵 키가 160도 안되던 애가 173이 됩니다. 그리고 성당활동, 성당의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리곤 시작합니다.
2. 대학시절
대학시절 매 학년, 매년마다 이유 모를 은인들이 한 분씩 등장하고,
저의 일년을 책임줘 줍니다. 제가 한 일은 누군가 고민이 있으면 말없던 제게 다가와 본인의 고민을 털어놨다고 전 미동도 안하고 집중해서 듣곤 했는데, 저는 말을 많이 하거나 위로를 건네지도 못 했습니다. 다만, 진심으로 경청하고 그들이 겪는 힘듦과 어려움에 동화되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제게 솔루션이 나올리 만무하고 아마 그들도 이미 그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문제해결책은 이미 본인이 잘 알고, 그게 맞든 안맞든, 그건 또 다른 선택일 뿐, 잘 못된 건 없는거라 말 해줬던 게 기억납니다. 공감의 반대는 뭘까요? 반감? 무시? 아님 비난? 아니죠, 무관심이었을 겁니다. 저의 당시 생각은 그랬습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면 조금 나아지는 기분과 생각의 전환내지 환기되는 느낌을 혹 누군가의관심 정도만 있어도 살아갈 거 같은 때가 있을 거잖아요. 보잘 것 없는 나 이지만, 그들이 필요한 시점에 거기서 그 역할을 해주는 건 어찌보면, 내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었을 존재라 그랬겠거니 했습니다.
그러고 이후 그들이 한 사람씩 저의 생활, 저의 식사, 저의 하나 하나 일이 있을때마다 맡고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되어주었습니다.
난 대학시절 풍족하지도, 잘 생기지도, 그렇다고 특출 나지도 뭐하나 내세울 것 없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소개팅도 주선해주고, 우린 강의시간표들이 다들 달랐기에 만날 일이 없는데 단과대에서 다른 전공건물까지 차를 끌고와서 점심밥 사준다고 죽치고 있을 때도 많았습니다. 1학년때는 같은 학년 5년선배가 군복학후, 2학년엔 초등학교 동창녀석이, 3학년때는 대학 1학년때 같이 강의 받던 과동기가 일년 휴학하고 복학하니 과 후배가 4학년 내동 익산/군산을 출퇴근 시켜주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들이 고민이 있었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주려던 저의 공감능력은
그들에겐 어떤 끈으로 느꺼진것 같습니다.
3. 현재 해외에서 빛을 발하는
공감능력
지금도 해외에서 활동하다보면, 각 기관의 기관장들은 보이지 않는 중압감이 있고 그건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저의 요청을 예산부족으로 어렵다고 할때, 저는 그들을 밀어 부치기보다는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고 보는 앞이든, 아니든 보여 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액션들을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게아니라 그보다는 여러 기관과 담당자들과 소통을 통해서 그들의 제안을 들어보자. 그들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알 수도 있고,
또 그 부분을 우리가 캐치해서 역제안도 해보자고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게 여기서 저의 역할이고 위치 입니다. 요즘도 한국측과 현지 기관의 의견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부족한 예산에서 최대한 돕는 중인데, 더 더 더 지원만
바라고 있습니다.
이럴땐 좀 분위기를 가라앉힐 냉각기도 필요하고 해서
한국에는 상황을 설명하고, 베트남에는 그의 생각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돕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다만 예산이 따르는 문제는 시간이 소요된다. 기다리자는 이야기가 최선입니다.
오늘도 주말 시간 행복으로 충만하셨기를 빌며, 저의 이야기는 내일도 이어집니다.
4. 역지사지
서로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외국에서 활동하다보면 확실히 이러한 사고의 부재로 일어나는 비화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주장을 펴더라도 근거와 타당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을 우리는 억지부린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직위가 기관을 대표하거나 중앙정부기관에 몸 담고 있어도 사고방식이 애들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 좋고 싫은 거 말고는 앞뒤 명분도 이유도 근거도 없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란 말입니다. 이건 가르친다고 깨우치는 게 아닌 이유가 그런 억지를 부려왔고, 계속 그게 통용이 되어 왔다면, 이미 충분한 증명과 명분이 있다고 느끼기에 무한 사용해왔을거기 때문입니다.
5.결론
세상 모든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또한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리를 깨우친 사람들은 언제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원하는 바를 쟁취해 일반인들의 눈에는 매력이라 느낄 때도 있고, 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한 자들이 리더 일 수도 때때로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물건을 파는 영업사원들은 언변의 달인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제품을 만들고 파는 회사의 편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고객을 위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고객 마음속 깊이까지 이해하는 공감능력을 키워왔고, 그 분야에서 숙련된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뛰어난 공감능력은 고객이 듣기원하는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해줄 때, 고객은 이미 영업사원이 가족과 같이 느껴지고, 그러한 내편을 돕고자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영업사원이 파는 물건을 사주는 것이 그 가족 같은 영업사원을 돕는 게 됩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제 이야기입니다. 저도 베트남 달랏에서 농장의 농산물을 팔기위해 여러 소매점과 야채가게를 방문합니다. 저는 영업얘기를 전혀 안합니다. 우선 계속 방문하고, 그곳 물건들을 사러가는 고객이 되어줍니다. 음료수 500미리를 하루 한번 내지 두번 사러 갑니다. 말도 안통하니, 인사만 반갑게 합니다. 한 일주일 지나서는 제가 하는 일들을 번역어플로 소개하고, 두번째 주에는 우리 농장에서 생산중인 방울토마토 300그람짜리 팩을 선물하면서 맛 한번 보시라고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드신 후에 품평 한마디만 부탁한다고 하면, 이분들 반응이 대부분 '이거 부족한 놈 이구나'하는 반응을 보여주면, 이미 반은 성공 입니다. 그리고 2일후에 가서 음료수 하나 사고 물어봅니다. 대부분 호반응이 나옵니다. 그럼 그때가서 요즘 우리 제품을 사가시던 고객이 주문이 뜸해져서 걱정인데, 제가 어떻게 해야 우리물건을 팔아 볼 수 있을까요? 단기소개도 해드리고, 타국이고 타지지만, 이렇듯 도와주는 분들이 많으셔서 일하는 맛이 나고, 사람사는 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면, 가족, 인척, 이웃, 지인 본인의 총 인맥을 동원해서 돕기 시작합니다. 사실 가게주인하고 2주째 처음 보는 사이가 전부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공감능력과 관계설정은 이 같이 없는 일이 생기고, 그들에게는 친근한 접근밥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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